2011년 5월 24일 화요일

[cifer's SM] 두서없는 이야기 두 개

월요일 새벽은 고요합니다.
특히 이슬비가 내린 다음날 월요일 새벽은 더욱 고요합니다.
담배를 하나 피러 창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말고는
쥐죽은듯 적막한 새벽 공기만 반깁니다.

이야기 하나.
얼마 전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일 DS 중인 돔과 섭이 있는데,
만일 돔이 섭을 자신의 노예라 생각지 않는다면,
섭이 돔을 자신의 주인이라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은 각각 DS일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양한 DS의 형태만큼이나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요.
정답이라 할 수 없는 내 생각은 단순합니다.
둘 다 DS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DS의 기본 조건은 진실입니다.
서로 신뢰할 수 없다면 DS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혹자는 내게 1회성 플도 DS가 아니냐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에 대해서도 전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단지 개인적인 생각일 뿐, 정답은 아닙니다.

이야기 둘.
역시 얼마 전, 제 노예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왜 누군가는 행복한 DS를 하고 누군가는 불행에 빠지는 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난 그것에 크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을 알아 볼 줄 아는 안목과 그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마지막으로 작은 행운입니다.

첫 번째, 자신의 주인을 알아 볼 줄 아는 안목입니다.
그것은 외모나 화술, 지적 능력,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을 말함이 아닙니다.
그 모든 ‘조건’들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섭이 유명한 대학을 나와 전도양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주인이 반드시 그보다 더 유명한 대학을 나와 더 전도양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조건은 어긋나지만 그 섭의 성향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그 섭의 주인입니다.
그런 주인을 알아보기 위해선 반드시 먼저 자신의 성향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섭의 성향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됩니다. 복종과 피학, 그리고 봉사입니다.
돔의 성향은 그것과 반대되겠지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이 이상은 ‘생략’합니다.
(((( '')a “난 무책임 한 사람~”

두 번째, 인내입니다.
성향은 공평합니다.
DS중이지 않은 많은 돔들만큼이나 섭들 역시 소위 ‘욕불’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의 성향이 발현되길 늘 원합니다.
그것은 비단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소위 작업을 잘하는 ‘꾼’들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곤 합니다.
상대적으로 남자들 보다 더 상처받기 쉽고, 잃을 것이 많은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DS에 있어 신중합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요?
불타는 ‘성향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불만 때문에 종종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상처를 받고, 아파하게 되지요.
그래서 더더욱 세 번째 조건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자그마한 행운입니다.
그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어떤 사람에겐 아무리 기다려도 평생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첫 번째 주인이 평생의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각 사람마다 기다릴 수 있는 인내는 다릅니다.
그 인내할 수 있는 기간 내에 자신의 주인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DS를 맺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런 행운이 함께 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