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cifer's 소설] 단편1/4


 1
 
힘없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무겁고 눈이 침침했다. 언뜻 비릿한 냄새가 나 손으로 코를 훔치니 피가 흠뻑 묻어 나왔다.
대체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
 
그녀는...
... 예쁘고 날씬하고 현명하고 지적이고 아름답고 현명한..., 아 이건 했나? 어쨌든, 남을 배려 할 줄 알고,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새로운 신약 개발에서 드러난 문제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앞에 커피를 갖다 놨다.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너무 쓰군. 설탕을 좀 더 타주겠어?"
라고 말하곤 갖다 준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커피를 밀어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무례라니.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 내 무례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다시 커피를 타다 내게 건네주었다.
그제야 커피를 건넨 손이 투박한 남자 손이 아닌 곱고 하얀 여자 손이라는 것을 알았고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나 보다.
그 후로 연구소에 들릴 일이 있으면 그녀는 내가 있는 곳까지 놀러왔다. 그리곤 어김없이 커피를 타주곤 했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 날씨가 좀 어떤가요?"
"이 바이러스는 Ch-V를 개량한 건데 종래 있던 에볼라에 비해 훨씬 치명적이랍니다.“
이런 시답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사무실 한 구석에서부터 다른 연구원들의 킥킥 대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을 못들 지경이다.
다행이도 그녀는 그런 헛소리에도 상냥히 받아 주었다.
"오늘은 어제 보다도 훨씬 화창하답니다. 산책하기 더 없이 좋은 날씨죠."
"어머나! 그렇군요. 바이러스가 그렇게나 무서울 줄이야. 그런 바이러스에 걸리는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오랜 심사숙고 끝에 난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천사다.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그녀의 아버지가 서류의 악마라고 불리는 L 소장이라는 사실이다. 대체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겼기에 악마에게서 저런 천사가 태어 날 수 있을까?
이거야 말로 절대 풀 수 없는 8대 미스터리가 아닐까?
 
연구가 막바지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주 밤을 새는 일이 많아졌다. 과로에 과로가 겹친 끝에 결국 난 연구실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때,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곁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날 간호하고 있었다.
"좀 더 누워 계세요."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요?"
"하아..."
난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그 동안의 연구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지금 가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연구원들도 있잖아요.”
아뇨. 그들의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험을 망치지 않으면 다행일 거예요.”
"하아. 어쩔 수 없군요."
그녀가 작고 도톰한 입을 오므려 한숨을 내쉬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휠체어를 가져 왔다.
"대신 내가 멈추라면 무조건 멈춰야만 해요. 약속할 수 있죠?"
"그거 알아요?"
"뭘요?"
"당신은 천사에요."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렇게 그녀의 도움을 받아 실험실로 돌아갔다.
다행이 아직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서둘러 당장 필요한 이것저것들을 지시하고 실험 진행 상황을 바라보며 잠깐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무언가가 볼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설마 그녀가 키스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이건 천사의 키스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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