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얼마 후 P양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공원도 산책하고 마지막으론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도 했다.
음식이란
단지 활동하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할 뿐이라는 내 평소 지론답게 고상과 우아함 따위는 전혀 없이 게걸스럽게 눈 앞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빙긋 웃으며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그녀가
내 입가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보곤 냅킨으로 손수 닦아 주며 말했다.
"아버님이
걱정이세요."
"뭘요?"
그녀의
손길에 정신이 혼미해 질 지경이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이번
연구에 너무 많은 연구원을 투입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러다
일본에 있던 하마시 연구소처럼 우리도 아무런 성과도 못 내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거죠. 그러지
않아도 너무 오랜 연구 기간 때문에 위에서는 연구를 중단시키려 한다는 소문도 있대요.“
“하긴
하마시 연구소는 그쪽 방면으로는 오랜 경험과 뛰어난 연구원들을 갖추고 있죠.”
“네. 맞아요. 그래도
아버님은 당신이 결코 헛된 짓을 하진 않을 거라 믿고 계세요."
난
씨익 웃었다.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연구소와 우리 사이에는 아주 큰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어머나, 그게
뭔데요?"
"저요."
"네?"
그녀는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일본의
하마시 연구소엔 결정적으로 제가 없거든요. 저도
실험 보고서를 봤습니다만 만일 일본의 연구소에 저와 비슷한 연구원이 있었다면 절대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다행이랄까? 일본군엔
저만한 연구원이 없더군요."
그녀는
내 말에 일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오므려 피 하는 소리를 냈다.
"너무
자신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일본에도 두려운 인물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언제부터인가
그녀석의 노트가 나오지 않더군요. 알아보니
좌천 되었다더군요. 만일
그 녀석이 있었다면 하마시 연구소는 우리보다 먼저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연구
초기, 아직
우리 쪽에선 개념조차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는데 저쪽에선 벌써 상세한 설계도까지 그려져 있었더군요. 그게
모두 그 녀석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죠. 근데
그거 아세요? 너무
뛰어난 천재는 오히려 질시를 받는 다는 거. 아마도
그녀석이 뛰어나다 보니 주변에서 그를 질시했던 모양이에요."
"그럼
K님은요?"
"저요?"
난
씨익 웃었다.
"저야
P양이
있잖습니까?"
그
날 이후로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뭔가 조금씩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없는데요?"
"여기
이 부분"
세포의
증식이 과도하게 빨라지면서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기존 진화의 법칙을 무시하고 세포 스스로 독자적인 진화의 단계를 건너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연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뭔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그런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어쩌면 이대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우리 역시 하마시 연구소의 전철을 밟아야 할지 몰랐다.
다만
저쪽은 실패했지만 우리 쪽은 너무 뛰어난 효능 때문에 오히려 사장시켜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그럼
실패인가요?“
“아뇨
실패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진화의
법칙을 뛰어넘는 진화는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아니잖아요.”
“아뇨. 실패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는 결과 또한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예측
할 수 없는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면 조만간 그 변화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봐요. 지금껏
연구를 주도해 왔고 또 이만큼이나 성과를 보였잖아요.”
"P양
덕분에 힘이 나는데요?"
역시
그녀는 천사가 맞다. 그
증거로 조금 전까지 심각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지금은 활짝 펴졌으니까. 이것
한 가지만 봐도 그녀가 천사라는 것이 단번에 증명되지 않겠는가?
여담이지만
심지어 연구 제3과에서
불독이라 불리는 J 연구
수석 주임조차도 그녀가 싱긋 웃을 때면 얼굴을 붉힌다. 생각해
보라 그 우락부락한 불독 같은 수석 연구 주임이 어린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다니! 이것이야
말로 그녀가 천사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날 난 그녀와 함께 밤을 맞았다. 그
다음날 아침 난 마치 세상 모두를 가진 것처럼 기뻤다.
어쨌든
고집 센 바이러스의 변화를 억제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다시
수많은 난관에 부딪쳤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나니 많은 실패 속에서도 오히려 느긋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이제 길들여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제어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끝내 변화를 예측하고 제어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제거하면 어떨까? 그
결과 급격한 진화의 변이는 사라졌지만 통제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의견은 일거에 거절당했다.
오히려
진화의 폭을 더욱 넓혀 보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위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자칫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날
저녁 P양과
만났을 때, 난
바이러스에 대해 내가 느낀 점과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어쩌면 연구를 포기하고 바이러스를 소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자
P양은
살포시 웃으며 그런 날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P양이
보이지 않았다.
L 소장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지만 소장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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