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던젼2002]
사드는 용어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사디즘, 사디스트의 어원이 된 사람이다. 롤랑 바르트 같은 사람은 사드에게 이러한 용어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며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도하지만 그의 생애와 그가 지은 소설은 그의 악명을 드높이기에 충분했다.
사드는 파리 출생으로 아버지가 백작이었던 순수한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에 몽테스키외와도 교류하는 등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사드는 그러한 아버지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 반면에 어머니는 사드가 어렸을 때부터 사드를 떠나 있었는데 이러한 가정사는 훗날 그가 반여성적 사상과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의 근원이 된다. 성년이 되자 그는 그때의 귀족이 그러했든 사법관의 딸과 정략적 결혼을 하게되지만, 계속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아르퀴이' 사건(1768)과 '마르세유' 사건(1772), '어린 소녀들'사건(1774) 등의 스캔들을 일으켜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생애의 1/3 이상을 옥중에서 보내게 된다.
이들 사건들은 사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우선 아르쾨이 사건은 1786년 부활절에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 실업자로 거리에서 구걸하던 로즈켈러라는 여자에게 사드는 청소를 해주면 금화 한 닢을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그녀는 제의를 받아들여 사드를 따라나서게 되고, 아르쾨이에 있는 작은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 집은 사드가 2년 전에 마련한 집으로 밤낮으로 방탕한 남녀가 들락거리며 숱한 추문을 뿌린 곳이다. 그는 거기에 로즈 켈러를 가두고 그녀를 채찍으로 내리치고 상처가 나면 그 위에 뜨거운 밀랍을 붓는 행위를 하는 등 온갖 잔혹한 행위를 했다. 그녀는 사드가 자리를 비운사이에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사드는 재판을 받고 7개월간 피에르 앙시에 감금되었다.
'마르세유'사건은 1772년 6월에 벌어졌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광란의 파티를 열어 그의 하인과 남색을 하고, 창녀들을 불러들여 여러 가지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채찍으로 창녀들을 때리기도 하고 창녀들로 하여금 자신을 때기게 하며 칼로 맞은 횟수를 매번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창녀에게 준 최음제였다. 당시 그는 최음제가 들어있는 사탕을 가지고 다니며 여러 곳에서 사용하였는데 그 사탕에 독이 들어있어 창녀들을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사드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고 가택 수사와 재산 압류, 그리고 결국 사형까지 내려지게 된다. (그는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이탈리아로 도망갔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제웅으로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1774년에 벌여진 '어린 소녀들' 사건에서 이제 그는 가학적 행위를 넘어서 살인까지 하게 된 경우이다. 사드는 5명의 소녀와 1명의 소년을 라 코스트 성의 하인으로 고용하여, 이들에게 음란, 가학행위를 벌였는데 그는 결국에는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사드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러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장모의 편지를 받고 다시 파리에 왔다가 투옥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사드는 자신이 "방탕아이기는 하지만 범죄자나 살인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단순히 표피적으로 드러난 사건들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사상과 철학 안에서 그는 행동한 것이기에 그의 사상적 측면을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 그의 철학을 구성하는 것은 반종교주의, 반도덕, 반여성주의 등이다.
그는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어버리려 할 때 종교는 생겨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설사 신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세상의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 악을 없애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거나 오히려 악을 사랑하고 권장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종교뿐만 아니라 도덕 또한 비웃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자연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음, 매춘, 간음, 근친상간, 강간, 동성애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한 행동이기에 정당하다고 보았다. 또한 우리가 범죄라고 여겨왔던 도둑질이나 살인도 그는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논리는 이러하다. 도둑질은 가진 자에게서 못가진 자에게로 부를 이전하기에, 살인은 인간이 원자로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의 자연의 힘을 덜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나 도둑질이나 살인 범죄가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또한 독특하게도 그는 여성이 가부장제와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을 외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페미니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생겨난 주장이 아니다. 그는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모든 여성이 창녀화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실제로 그는 모든 여성은 어떠한 남성이라도 섹스를 요구하면 이에 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단순히 성적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사드의 에로티시즘은 극단적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모든 활동의 근원은 쾌락이며 그 것이 원리가 된다. 사랑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된다.
사드는 "한마디로 무조건 즐기는 거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니까. 너의 능력과 의지만이 너의 쾌락을 제한 할 수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너의 기쁨을 막아설 수 는 없단다.(<안방철학>)"
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한한 쾌락을 주는 금기의 위반이 사드에게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도덕적 죄의식에서 벗어난다면 금기를 위반하는 것은 엄청난 쾌락을 안겨다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금기를 위반하는 주체는 통제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이성의 작용, 자기 통제 아래 쾌락은 극대화 된다고 사드는 생각했다. 사드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온갖 음란, 가학 행위를 벌이면서도 갑자기 종교나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지나치게 성기의 크기나 외양 묘사에 집착하는 것은 사드의 냉정한 태도아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드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드는 잔인성에 관해서도 역설한다. 사드는 상대방과 고통을 서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쾌락은 더욱더 확장된다고 생각했다. 가학 행위는 식어버린 욕망을 되살리고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성적 활력을 되찾아 준다. 아마도 오늘날에 사드가 사디즘의 어원이 된 것도 잔인함에 기인하는 가학행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드의 생애와 사상은 그의 소설을 통해 구현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두 자매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묘사한 일종의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1791) 《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1797), 철학소설의 일종인 서간체 작품 《알린과 발쿠르》(1795), 신랄한 대화체의 작품 《규방철학(閨房哲學)》(1795) 등이 있고, 20세기에 들어와 처음 으로 발견된 성도착(性倒錯)의 총목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돔:120일》(1904) 등이 있다.
사드는 용어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사디즘, 사디스트의 어원이 된 사람이다. 롤랑 바르트 같은 사람은 사드에게 이러한 용어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며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도하지만 그의 생애와 그가 지은 소설은 그의 악명을 드높이기에 충분했다.
사드는 파리 출생으로 아버지가 백작이었던 순수한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에 몽테스키외와도 교류하는 등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사드는 그러한 아버지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 반면에 어머니는 사드가 어렸을 때부터 사드를 떠나 있었는데 이러한 가정사는 훗날 그가 반여성적 사상과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의 근원이 된다. 성년이 되자 그는 그때의 귀족이 그러했든 사법관의 딸과 정략적 결혼을 하게되지만, 계속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아르퀴이' 사건(1768)과 '마르세유' 사건(1772), '어린 소녀들'사건(1774) 등의 스캔들을 일으켜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생애의 1/3 이상을 옥중에서 보내게 된다.
이들 사건들은 사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우선 아르쾨이 사건은 1786년 부활절에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 실업자로 거리에서 구걸하던 로즈켈러라는 여자에게 사드는 청소를 해주면 금화 한 닢을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그녀는 제의를 받아들여 사드를 따라나서게 되고, 아르쾨이에 있는 작은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 집은 사드가 2년 전에 마련한 집으로 밤낮으로 방탕한 남녀가 들락거리며 숱한 추문을 뿌린 곳이다. 그는 거기에 로즈 켈러를 가두고 그녀를 채찍으로 내리치고 상처가 나면 그 위에 뜨거운 밀랍을 붓는 행위를 하는 등 온갖 잔혹한 행위를 했다. 그녀는 사드가 자리를 비운사이에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사드는 재판을 받고 7개월간 피에르 앙시에 감금되었다.
'마르세유'사건은 1772년 6월에 벌어졌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광란의 파티를 열어 그의 하인과 남색을 하고, 창녀들을 불러들여 여러 가지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채찍으로 창녀들을 때리기도 하고 창녀들로 하여금 자신을 때기게 하며 칼로 맞은 횟수를 매번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창녀에게 준 최음제였다. 당시 그는 최음제가 들어있는 사탕을 가지고 다니며 여러 곳에서 사용하였는데 그 사탕에 독이 들어있어 창녀들을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사드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고 가택 수사와 재산 압류, 그리고 결국 사형까지 내려지게 된다. (그는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이탈리아로 도망갔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제웅으로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1774년에 벌여진 '어린 소녀들' 사건에서 이제 그는 가학적 행위를 넘어서 살인까지 하게 된 경우이다. 사드는 5명의 소녀와 1명의 소년을 라 코스트 성의 하인으로 고용하여, 이들에게 음란, 가학행위를 벌였는데 그는 결국에는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사드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러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장모의 편지를 받고 다시 파리에 왔다가 투옥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사드는 자신이 "방탕아이기는 하지만 범죄자나 살인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단순히 표피적으로 드러난 사건들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사상과 철학 안에서 그는 행동한 것이기에 그의 사상적 측면을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 그의 철학을 구성하는 것은 반종교주의, 반도덕, 반여성주의 등이다.
그는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어버리려 할 때 종교는 생겨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설사 신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세상의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 악을 없애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거나 오히려 악을 사랑하고 권장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종교뿐만 아니라 도덕 또한 비웃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자연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음, 매춘, 간음, 근친상간, 강간, 동성애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한 행동이기에 정당하다고 보았다. 또한 우리가 범죄라고 여겨왔던 도둑질이나 살인도 그는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논리는 이러하다. 도둑질은 가진 자에게서 못가진 자에게로 부를 이전하기에, 살인은 인간이 원자로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의 자연의 힘을 덜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나 도둑질이나 살인 범죄가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또한 독특하게도 그는 여성이 가부장제와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을 외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페미니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생겨난 주장이 아니다. 그는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모든 여성이 창녀화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실제로 그는 모든 여성은 어떠한 남성이라도 섹스를 요구하면 이에 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단순히 성적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사드의 에로티시즘은 극단적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모든 활동의 근원은 쾌락이며 그 것이 원리가 된다. 사랑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된다.
사드는 "한마디로 무조건 즐기는 거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니까. 너의 능력과 의지만이 너의 쾌락을 제한 할 수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너의 기쁨을 막아설 수 는 없단다.(<안방철학>)"
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한한 쾌락을 주는 금기의 위반이 사드에게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도덕적 죄의식에서 벗어난다면 금기를 위반하는 것은 엄청난 쾌락을 안겨다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금기를 위반하는 주체는 통제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이성의 작용, 자기 통제 아래 쾌락은 극대화 된다고 사드는 생각했다. 사드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온갖 음란, 가학 행위를 벌이면서도 갑자기 종교나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지나치게 성기의 크기나 외양 묘사에 집착하는 것은 사드의 냉정한 태도아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드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드는 잔인성에 관해서도 역설한다. 사드는 상대방과 고통을 서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쾌락은 더욱더 확장된다고 생각했다. 가학 행위는 식어버린 욕망을 되살리고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성적 활력을 되찾아 준다. 아마도 오늘날에 사드가 사디즘의 어원이 된 것도 잔인함에 기인하는 가학행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드의 생애와 사상은 그의 소설을 통해 구현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두 자매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묘사한 일종의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1791) 《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1797), 철학소설의 일종인 서간체 작품 《알린과 발쿠르》(1795), 신랄한 대화체의 작품 《규방철학(閨房哲學)》(1795) 등이 있고, 20세기에 들어와 처음 으로 발견된 성도착(性倒錯)의 총목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돔:120일》(1904) 등이 있다.
=>SM이라고
할때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뜻한다.
바로
그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기원을 풀어 놓은 글이다.
그런데
너무 학구적이다.
마치
대학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필수 교양과목 같달까?
그래서
별 세개다.
자신이
하고 있는 SM에 대해 그 기원을 알아두는 교양쯤은 다들 필수로 익혀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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